김혜영 이사장(김혜영 농촌미래연구소, 前대학교수)
우리나라 농촌은 지금 생존의 문턱에 서 있다. 학교는 문을 닫고, 병원은 떠나며, 버스마저 끊길 위기이다.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는 일상이 되었고, 마을마다 ‘마지막 주민’이란 말이 더 이상 비유가 현실이 되고 있다. 그동안 농업 지원이나 귀농 정책이 쏟아졌지만, 근본적 해결을 위한 대책이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제는 농촌 주민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생활 보장이 필요하다. 그 해법 중 하나로 떠오른 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청년기본소득, 농민기본소득을 실험하며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사회적 투자이자 지속 가능한 성장의 촉진제”라 강조해 왔다. 특히 지역화폐를 활용한 방식은 지역경제 선순환과 자립 기반 형성에 주목할 만하다. 농촌에는 다음 세 가지 형태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농촌 기본소득 도입이다. 일정 요건을 충족한 농민·귀농인에게 매월 정액의 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둘째, 지역 내 소비 유도이다. 지급된 소득이 지역 상권, 협동조합, 전통시장에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셋째, 생활권 기반 보장이다. 의료·교통·통신 등 최소 생활 조건을 공공이 책임지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험되었는데, 대부분 농촌 지역에서 실험이 시작되었고, 도시보다 농촌 지역이 더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초로 대규모 기본소득 실험이 이루어진 국가는 캐나다이다. 캐나다는 1970년대 마니토바주 도핀(Dauphin) 시에서 농촌 기본소득 실험인 ‘Mincome’(Minimum Income)을 시행되었다. 모든 주민에게 가구소득과 연동한 일정 기본소득을 지급했다. 이 결과 입원율 8.5% 감소(특히 정신질환 및 사고 관련 입원), 청소년 조기 중퇴율 감소, 농촌 여성의 가사 노동 지속성 증가를 이루었다. 흥미로운 점은 노동시간이 대폭 줄지 않았고, 일부 주민은 이를 바탕으로 농업 외 활동(소규모 창업, 교육 등)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본소득이 노동 유인을 해치지 않으며, 농촌 주민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2011년, 인도 마디아프라데시(Madhya Pradesh) 주에서는 UNDP와 공동으로 8개의 농촌 마을 주민 전원에게 매달 무조건적인 기본소득 지급 실험을 시행했다. 성인에게는 200루피(약 3,000원), 아동에게는 100루피를 매월 지급(지역 구매력 기준 유의미한 금액)했다. 기본소득 지급 후 식량 소비 증가 및 영양이 개선되었으며, 가계의 생산적 투자 증가(가축 구입, 농기계 정비 등), 학교 출석률 증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가 이루어졌다. 이 사례는 소액의 기본소득이라도 농촌의 생존 능력과 자립 의지를 크게 높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유럽에서는 자일리톨껌(자작나무에서 자일리톨 추출)으로 유명한 핀란드가 기본소득 정책을 펼쳤다. 핀란드는 2017~2018년 동안 무작위 선정된 실업자 2,000명에게 월 560유로(약 80만 원, 실업수당과 비슷한 규모로 책정)를 무조건 지급하는 무작위 통제 실험(Randomized Control Trials; RCT) 형태의 기본소득 정책을 진행했다. 무작위 통제 실험은 동전 던지기와 같이 혜택을 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어 두 집단의 성과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다. 형평성과 윤리적인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핀란드 의회는 기본소득법(Laki perustulokokeilusta)을 제정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다. 기본소득 실험 대상이 되었던 사람은 대다수 소도시와 농촌 지역에 거주하던 실직자들이었다. 기본소득 수급 집단은 실업급여 수급 집단보다 삶의 만족도와 건강, 심리적 복지와 우울증, 인지 능력, 경제적 복지와 자유, 관료주의에 대한 경험, 사회적 신뢰 등 다양한 주관적 지표에서 전반적으로 더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고 한다. 농촌 주민의 경우 기본소득 덕분에 불안정한 일자리나 자영업(소규모 농장, 수공업 등)에 대한 도전이 가능해졌다고 응답했다. 이는 농촌에서의 기본소득이 단순한 ‘실업 지원’이 아닌 생계 기반 마련과 공동체 지속성 유지에 효과적임을 보여준 결과로 볼 수 있다.
출처 :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결과(출처 : e-세계농업, 제5호, p12.)
해외 사례는 기본소득이 비현실적인 이상이 아닌, 이미 작동하는 제도적 수단임을 증명해 주고 있다. 농촌과 같이 고립되고 불안정한 지역에서 기본소득은 선심성 돈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기반을 회복시키는 정책이 될 수 있다. 물론 기본소득으로 농촌이 기적처럼 회생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계기는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지속 가능한 농촌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을 기반으로 기본생활 보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그동안 기본생활과 관련하여 기초생활서비스, 365생활권 등 정책이 추진되었고, 농촌의 인프라나 생활환경에 많은 개선이 있었다. 문제는 농촌생활이 일시적 정책으로 구체적인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농촌협약, 농촌재구조화 등 굵직한 정책으로 큰 틀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기존 사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농촌기본생활’은 기본소득에 주거·생활인프라·복지·문화·의료·(평생)교육·생활체육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은 농촌에서 거주하는 주민을 대상으로 거주지(읍면 소재지, 자연마을), 거주기간, 연령, 주된 직업, 소득 등 고려하여 기본소득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농촌생활에 따른 추가 비용을 산출해야 한다. 도시의 경우 보편적인 생활서비스 이용에 따른 교통과 시간 비용은 농촌에 비해 낮은 실정이다. 물류와 상가 밀집으로 구매 비용도 저렴하다. 반면 농촌에서 자동차는 대중교통 여건이 좋은 도시의 자동차와 차원이 다르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 추가 비용은 불가피하다. 소멸에 직면한 2천 명 이하 면 소재지는 상가도 문을 닫은 지 오래되었다. 먹을 것 하나를 사거나, 머리를 깎기 위해서는 읍소재지로 이동해야 하므로 추가적인 비용과 시간은 불가피하다.
기본소득은 최소 보장이라면 ‘농촌기본생활’은 농촌에서도 행복생활을 누릴 수 있는 삶터를 만드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최소 생활을 위한 기본소득을 넘어 어느 마을에 살더라도 공평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생활 에너지 바로 ‘(가칭)영광기본생활’을 만들어야 한다. 영광기본생활은 이재명 정부의 기본소득을 바탕으로 읍면과 마을 단위 최저생활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읍면과 마을마다 똑같은 시설을 짓기보다 어느 곳에 무엇이 부족하고, 필요한지 분석해야 한다. 농어업 생활, 인구구성을 기본으로 지역 생활서비스 분석을 통해 단기·중기·장기 계획을 통한 생활 개선이 필요하다. 중앙정부에서 추진하는 생활서비스는 큰 틀에서 활용하고, 지역에서는 섬세하고, 촘촘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영광마을생활복지관이 있었으면 한다. 영광마을생활복지관은 단순히 건물을 하나 더 짓는 것이 아니다. 주민복지와 생활서비스를 실태 파악과 확충으로 마을 단위로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일부 경로당에는 마을만들기사업 등으로 주민역량강화사업의 건강교실이 진행되고 있다. 건강교실은 계속 필요하지만, 사업이 종료되면 중단된다. 지금과 같이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서비스로 기본생활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면 소재지에 미용실이 없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누군가가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면 해결이 될까? 인구가 없어 적정 소득을 얻을 수 없다면 폐업은 시간문제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민 미용 서비스까지 제공해야 하는 것인가?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미용과 같은 개인위생 서비스조차 받지 못하는 곳에서 생활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농촌기본생활에는 미용과 같이 기초적인 생활서비스 뿐만 아니라 여가·문화까지 농촌생활 전반을 담아야 한다.